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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입대 준비를 했다. 남들 다 다녀오는 군대를 나는 아직 가지 않은 상태였다. 군대에 감으로써 잃게되는 것들을 전혀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마초가 되는 것은 둘째치고 그 사이에 내것이었던 것들이 남에게 송두리채 넘어가는 것을 참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D와 의절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육군장교 준비를 시작했다. 체력장 준비를 위해서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늘 마초에 대한 혐오가 가득차있었는데 장교 시험에 필요한 체력장 준비를 하면서 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의 섹스에서 지구력을 얻었다. 일산 여자는 내 단단해진 복근을 만지고 단단해지고 울퉁불퉁해진 팔뚝을 만지면서 흡족해했다. 나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에도 조예가 있고 음악에도 밝으며 영화도 환하게 꿰고 있는 그런 남자가 몸까지 만들었을 때 두말할 나위 없이 썩 괜찮은 남자가 되는 것이라면서 내 몸의 변화를 즐겼다. 힘자랑하고 공놀이 하는 것을 혐오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 '웨이트 중독자'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 10개가 힘겨웠던 푸시업은 6개월이 넘어가자 100개를 손쉽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윗몸 일으키기는 2분에 100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녀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늘 우리가 이야기했던 대로 기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어떤 젊은 이들의 정치단체 소속이었던 그녀는 세상의 부조리를 다 훑어서 세련된 필치로 한 방에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녀는 어떤 진보신문에서 운영하는 기자학교를 다니면서 글쓰기를 가다듬과 매번 내게 한국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회과학서와 수필들을 들고와 권하곤 했다. 거의 매일 한 권씩 책을 읽는 나였고 그녀가 권하는 책에도 욕심을 냈다. 도서관의 옆자리에는 늘 그녀가 있었고 데이트가 없는 날에는 헬스장에 가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길 즐겼다.
3학년부터 전공공부에 한참 재미를 붙여가던 나였기에 책 읽기는 깨나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전공공부에 대한 재미가 붙었던 것은 전공에 대한 재미였다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내 식견을 운동권이나 전통적인 정치학을 공부했던 녀석들과는 다른 투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자기만족 때문이었다. 진보적이면서도 좀 다르고 박식해 보이는 그런 모습에 대한 나르시즘에 빠져들었다. 학과 학술제를 두 번 책임지는 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내게는 깨나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4학년 2학기 말의 어느 날 나는 육군장교 시험에 합격했고, 다음 해의 7월 입대 전까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까워 모교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축하해줬다. 사실 대학원에 갔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대학원생이던 일산 여자의 일상을 이해하고 싶은 까닭도 있었다. 내 인생은 탄탄대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학교로 찾아오던 육군장교 선배 한 명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 근교로 배치받아 서울로 매 주말마다 나와서 엄마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내 돈으로 영화도 보고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뮤지컬도 보고 콘서트도 자유로이 가고 전시회도 가고 그녀와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맘이 부풀기 시작했다. 물론 육군장교 선배는 실상을 이야기하면서 '점프'(부대에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에게 육군장교로 입대하라고 했던 선배에게 느꼈던 배신감. "사기 당한 줄 알았다"로 정리되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살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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