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그리고 취향 3 The fables in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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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입대 준비를 했다. 남들 다 다녀오는 군대를 나는 아직 가지 않은 상태였다. 군대에 감으로써 잃게되는 것들을 전혀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마초가 되는 것은 둘째치고 그 사이에 내것이었던 것들이 남에게 송두리채 넘어가는 것을 참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D와 의절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육군장교 준비를 시작했다. 체력장 준비를 위해서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늘 마초에 대한 혐오가 가득차있었는데 장교 시험에 필요한 체력장 준비를 하면서 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의 섹스에서 지구력을 얻었다. 일산 여자는 내 단단해진 복근을 만지고 단단해지고 울퉁불퉁해진 팔뚝을 만지면서 흡족해했다. 나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에도 조예가 있고 음악에도 밝으며 영화도 환하게 꿰고 있는 그런 남자가 몸까지 만들었을 때 두말할 나위 없이 썩 괜찮은 남자가 되는 것이라면서 내 몸의 변화를 즐겼다. 힘자랑하고 공놀이 하는 것을 혐오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 '웨이트 중독자'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 10개가 힘겨웠던 푸시업은 6개월이 넘어가자 100개를 손쉽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윗몸 일으키기는 2분에 100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녀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늘 우리가 이야기했던 대로 기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어떤 젊은 이들의 정치단체 소속이었던 그녀는 세상의 부조리를 다 훑어서 세련된 필치로 한 방에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녀는 어떤 진보신문에서 운영하는 기자학교를 다니면서 글쓰기를 가다듬과 매번 내게 한국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회과학서와 수필들을 들고와 권하곤 했다. 거의 매일 한 권씩 책을 읽는 나였고 그녀가 권하는 책에도 욕심을 냈다. 도서관의 옆자리에는 늘 그녀가 있었고 데이트가 없는 날에는 헬스장에 가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길 즐겼다.

3학년부터 전공공부에 한참 재미를 붙여가던 나였기에 책 읽기는 깨나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전공공부에 대한 재미가 붙었던 것은 전공에 대한 재미였다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내 식견을 운동권이나 전통적인 정치학을 공부했던 녀석들과는 다른 투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자기만족 때문이었다. 진보적이면서도 좀 다르고 박식해 보이는 그런 모습에 대한 나르시즘에 빠져들었다. 학과 학술제를 두 번 책임지는 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내게는 깨나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4학년 2학기 말의 어느 날 나는 육군장교 시험에 합격했고, 다음 해의 7월 입대 전까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까워 모교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축하해줬다. 사실 대학원에 갔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대학원생이던 일산 여자의 일상을 이해하고 싶은 까닭도 있었다. 내 인생은 탄탄대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학교로 찾아오던 육군장교 선배 한 명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 근교로 배치받아 서울로 매 주말마다 나와서 엄마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내 돈으로 영화도 보고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뮤지컬도 보고 콘서트도 자유로이 가고 전시회도 가고 그녀와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맘이 부풀기 시작했다. 물론 육군장교 선배는 실상을 이야기하면서 '점프'(부대에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에게 육군장교로 입대하라고 했던 선배에게 느꼈던 배신감. "사기 당한 줄 알았다"로 정리되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살 것이라 확신했다.

엇갈림 그리고 취향 2 The fables in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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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그녀는 학과 선배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선배는 전과한 싹싹하고 책임감있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 선배는 늘 나를 주위사람들 앞에서 똑똑한 녀석이라며 치켜주곤 하였다. 그 선배와 그녀는 봉사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선배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연애에서 이렇게 이쁘고 멋진 여성을 만났다며 주위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에게 존댓말로 대화했다. "B씨." "C 오빠님."

나는 당시 영국문화원을 다니고 있었다. 영국문화원의 수업은 15명 남짓의 사람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매번 지각하는 일산 여자. 일산 여자와 나와 바이엘에 다니는 '지미Jimmy'라는 아저씨, 그리고 '모니카'라는 한의사는 함께 아침을 먹었다. 수업은 아침 7시라는 치명적인 시간이었고. 밥을 거르고 가기에 일쑤였다. 엄마에게 아침 7시 수업을 듣는 나는 성실함의 표상으로 느껴졌지만. 어쨌거나. 매번 수업이 끝나면 헤롱거리기 마련이었고. 영국문화원 앞에 있었던 <플로렌스>라는 카페의 큰 대접에 나오는 아메리카노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롤빵은 썩 괜찮은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4사람은 늘 끝도 없는 수다를 떨었다. 모두 싱글이었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똑부러지고 전혀 흠 잡히지 않게끔 틈을 주지 않는 모니카, 자신이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수완이 좋은 사람임을 강변하는 지미가 나이든 축이었다면. 나와 일산 여자는 대학의 '풋풋한' 이야기로 그들을 즐겁게 했다. 어느 날엔가 일산 여자는 내게 교보문고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일산 여자는 펜과 파일 케이스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녀와 늘상 그랬듯이 수다를 떨었고. 좀 지나 커피를 사주겠다며 세종문화회관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인도했다. 생애 처음 가는 브랜드 커피 전문점. 어쨌거나. 그녀와 나는 2층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얕은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아서 서로는 책을 읽고 있었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좀 자겠다고 고개를 젖혔다. 카페인의 기운인가 잠이 오지 않아 앞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냅킨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일산 여자는 그 소리마저 죽였다. 좀 지나고 미안하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자 일산 여자와 나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 일산 여자의 연애를 축하하며 내게 '커플조아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당시 '커플조아지' 혹은 '커플 제국', '솔로 부대' 등의 말들이 <디씨 인사이드>에서 풍자되던 시기였다. 나는 그녀에게 '솔로레타리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그것들은 그녀와 나의 다시 맺은 싸이 일촌명이 되었다. 우리는 취향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독립영화를 보러 다니고, 인디공연을 보러 가고, 대안문화공간에 가서 함께 춤을 추었다. 책을 선물하고 선물받고. 정치평론을 하고 사회평론을 하고 영화비평을 하고 미술비평을 했다. 그녀는 내게 프린스의 씨디를 선물했다. 나는 그녀에게 퀸의 A Night at the Opera의 씨디를 주었다. 나는 퀸의 음악을 너무 어렸을 때 많이 들어서 퀸을 너무 사랑함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그녀는 프린스의 씨디에 나온 퀸의 목소리와 이적이 긱스에서 내고자 했던 목소리에 대한 해석을 했다. 나는 보태서 내가 패닉 팬클럽을 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화를 보태주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지는 않았고,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자주한다고 말했지만 남자친구와 언니네이발관 공연을 보지는 않았다. 나와 그녀는 문화생활을 같이했다. 그녀는 늘 내게 행복하다고 말하고 나는 그녀에게 늘 즐거운 연애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단 한 번도 연애의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는 주저리주저리 내 연애에서 발생했던 일들, 여자친구와 싸운 일들을 그녀에게 말 하곤 했다. 그녀와 나의 대학생활이 끝나갔다.

엇갈림 그리고 취향 1 The fables in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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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 전쯤 한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친구와 연애중이었다. 둘은 죽고 못 사는 동아리의 CC였다. 둘은 매번 같이 부둥켜 않은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곤 했고, 어떤 모임에든 둘은 늘 함께였다. 남자는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를 떠올리지 않기로 이를 악물고, 다른 여자를 만나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2년 여를..
그리고 스물두 살의 어느 날 남자가 군대에 갔다. 남자는 군대에 가면서 내게 그녀가 외로움을 많이 타니 친하게 잘 지내라 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조차 손에 넣지 못한 상태였다. 낯선 번호.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받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같이 앉아서는 마이클 무어의 <Bowling for Columbine> 같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괴팍한 운동권 선배에 대한 흉을 봤다. 우리는 존 레논의 'Oh My Love' 같은 노래에 흠뻑 젖었다. 어느 새 우리는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의 만남을 더 잦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학회를 만들었다. 학회의 이름은 '해방'의 불어이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조건 안에 있는 모든 것에서 그녀가 해방되기를 바랬다.

20분 쯤 학교 앞에서 나와 걸으면 그녀가 집에 가는 노선이 있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늘상 우리는 그렇게 걷곤 했다. 즐거웠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어느 날엔가도 그녀와 나는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 즈음 그녀는 내게 우울한 맘을 털어놓곤 했다. 내 친구, 아니 그녀의 남자친구가 훈련소에 들어간지 한참이 되었건만 아직 편지 한 통이 없다고. 그리고 집에는 전화한 것 같은데 자신에게는 전화가 없다고. 그 우울함의 대화가 그 날에는 이상하게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날 전까지는 신기하게도 참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잠금장치가 해제된 것만 같았다. 나는 화를 냈다.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나는 너한테 어떤 존재인데?"

그녀는 뭔가 내게 말하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뿌리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뛰듯 걸어갔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답장하지 않았다. 밤 11시 30분. 메신저에 접속했다. 접속이 완료되자마자 그녀가 말을 걸었다. "무서워" "뭐가?" "무서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손쉽게 상황정리를 선언했다. "A는 B를 좋아하는 것이고, B는 A를 좋아하는 것이다. 둘은 그걸 안 거고. 우리는 만나면 된다." "정말.....?"

봄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 맞춰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새 손을 잡고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스킨십을 배웠다. 저돌적이기만 했던 나는 연애할 수 있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곧 이어 위기가 찾아왔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와 내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선배에게 끌려가 욕을 먹고. 나는 그 선배의 눈물을 보았다. 그녀는 선배에게 우리 사이를 부인했고, 그녀가 선배를 만나기 전 나는 선배에게 우리 사이를 고백했다. 선배를 만나고 온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누가 이야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을 채울 수가 없었다. 내게는 처음 찾아온 사랑이 너무나 커다란 것이었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눈을 한 번 깜빡 거릴 때마다 그녀가 어른거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Oh My Love"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내 조바심은 모든 상황에서 내가 더 큰 사랑을 보여주어야만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공간들에서 그녀를 찾으려 했다. 그녀는 늘 그 공간들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늘 그 공간들을 지옥으로 만들어냈다. 담뱃진이 온 몸에 그득 뱄다. 소주의 알콜기가 나를 지배했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피폐해졌다. 그녀의 날 선 말 한 마디가 너무나 두려웠다. 그녀는 말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해 마치 몇 년 간 기를 모아온 것 같았다. 나는 상황에서 도망쳤다. 연락을 끊었던 것은 나였다.

보다 못한 동아리 형은 나에게 4명이서 놀러가자는 제안을 했다. 서해안 안면도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형이 내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사람과 나는 파트너가 되었다. 둘이는 담배를 나눠 피웠다. 둘이는 키스를 했다. 둘이는 섹스를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잠깐 만나자고. 둘이 매번 밀담을 나누던 공간은 재판소로 변해있었다. 나는 판사이자 검사이고 검사이자 피고이고 피고이자 원고였다. 나는 짧게 내뱉었다. "너 내게 올 수 있어?" "........." "내게 올 수 없다면 다시 보지 말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이 마신 음료의 값을 지불하고 나갔다. 다시 선량하고 어리석어진 나는 그녀가 내 맥주 값을 낸 줄 알고 그냥 나가려다가 알바생에게 잡혀서 맥주 값을 냈다.

몇 달 간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아니. 보지 못했고 그녀는 나를 피했다. 나는 그녀를 피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어느 날 제대한 친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동기애'라는 알량한 명분으로 그 친구는 나와 그녀를 다시 화해시키고 싶어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친하게 지내자는 나의 제안에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라고 말했고 나는 "이제 다시 친구. 친구로 지내자"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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