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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그녀는 학과 선배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선배는 전과한 싹싹하고 책임감있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 선배는 늘 나를 주위사람들 앞에서 똑똑한 녀석이라며 치켜주곤 하였다. 그 선배와 그녀는 봉사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선배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연애에서 이렇게 이쁘고 멋진 여성을 만났다며 주위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에게 존댓말로 대화했다. "B씨." "C 오빠님."
나는 당시 영국문화원을 다니고 있었다. 영국문화원의 수업은 15명 남짓의 사람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매번 지각하는 일산 여자. 일산 여자와 나와 바이엘에 다니는 '지미Jimmy'라는 아저씨, 그리고 '모니카'라는 한의사는 함께 아침을 먹었다. 수업은 아침 7시라는 치명적인 시간이었고. 밥을 거르고 가기에 일쑤였다. 엄마에게 아침 7시 수업을 듣는 나는 성실함의 표상으로 느껴졌지만. 어쨌거나. 매번 수업이 끝나면 헤롱거리기 마련이었고. 영국문화원 앞에 있었던 <플로렌스>라는 카페의 큰 대접에 나오는 아메리카노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롤빵은 썩 괜찮은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4사람은 늘 끝도 없는 수다를 떨었다. 모두 싱글이었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똑부러지고 전혀 흠 잡히지 않게끔 틈을 주지 않는 모니카, 자신이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수완이 좋은 사람임을 강변하는 지미가 나이든 축이었다면. 나와 일산 여자는 대학의 '풋풋한' 이야기로 그들을 즐겁게 했다. 어느 날엔가 일산 여자는 내게 교보문고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일산 여자는 펜과 파일 케이스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녀와 늘상 그랬듯이 수다를 떨었고. 좀 지나 커피를 사주겠다며 세종문화회관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인도했다. 생애 처음 가는 브랜드 커피 전문점. 어쨌거나. 그녀와 나는 2층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얕은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아서 서로는 책을 읽고 있었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좀 자겠다고 고개를 젖혔다. 카페인의 기운인가 잠이 오지 않아 앞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냅킨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일산 여자는 그 소리마저 죽였다. 좀 지나고 미안하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자 일산 여자와 나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 일산 여자의 연애를 축하하며 내게 '커플조아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당시 '커플조아지' 혹은 '커플 제국', '솔로 부대' 등의 말들이 <디씨 인사이드>에서 풍자되던 시기였다. 나는 그녀에게 '솔로레타리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그것들은 그녀와 나의 다시 맺은 싸이 일촌명이 되었다. 우리는 취향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독립영화를 보러 다니고, 인디공연을 보러 가고, 대안문화공간에 가서 함께 춤을 추었다. 책을 선물하고 선물받고. 정치평론을 하고 사회평론을 하고 영화비평을 하고 미술비평을 했다. 그녀는 내게 프린스의 씨디를 선물했다. 나는 그녀에게 퀸의 A Night at the Opera의 씨디를 주었다. 나는 퀸의 음악을 너무 어렸을 때 많이 들어서 퀸을 너무 사랑함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그녀는 프린스의 씨디에 나온 퀸의 목소리와 이적이 긱스에서 내고자 했던 목소리에 대한 해석을 했다. 나는 보태서 내가 패닉 팬클럽을 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화를 보태주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지는 않았고,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자주한다고 말했지만 남자친구와 언니네이발관 공연을 보지는 않았다. 나와 그녀는 문화생활을 같이했다. 그녀는 늘 내게 행복하다고 말하고 나는 그녀에게 늘 즐거운 연애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단 한 번도 연애의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는 주저리주저리 내 연애에서 발생했던 일들, 여자친구와 싸운 일들을 그녀에게 말 하곤 했다. 그녀와 나의 대학생활이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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